부드러운 유영(遊泳) 속으로
햇수로 4년을 기록하고 있는 이 곳 다생소활이다.
이름이 언제적 어느 시절에 만들어진 것인지를 굳이 연결하며 떠올리지 않더라도
언제나 “다생소활”의 네글자 앞에서 나는 무릎이 꺽이고, 예외없는 전율은 내 몸을 훑으면서 흐른다.
진정한 의미의 감격과 감회를 뉘라 알랴.
그 참되고 온전한 의미를 난들 어떻게 다 알 것인가.
그러나 내 몸이, 그리고 영혼이 그나마 놓치지 않고 한 쪽 끝자락 잡아주고 있는 덕분에
이 회오리 같은 폭풍 속을 들어가면서도 작은 감동 안에 머물 수 있음을 감사한다.
4년차 다생소활은 조금은 더 유연한 자유를 갖고 싶다.
3년차 “소활”제도도 이제는 조금 더 편안한 당당함이고 싶다.
“헥소미아”는 더 크고 빠른 걸음으로 세상을 향해 달려가려고
아직 풋내음 가시지 않은 “마시는 헥소미아”를 품에 안고 이제 스타트 라인을 떠났다.
하던 일에 대한 미련이 없는 곳이 이 곳이다.
하던 일, 혹은 스타일을 지속해야만 한다는
자신도 모르게 스며든 관념에 힘들 이유가 없는 곳도 이 곳이다.
익숙해지기 까지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이러한 연습?으로
‘오고감’에 있어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경계를 배울 수 있다.
행했던 일들의 이유가 명명백백(明明白白)하고
또한 그 행위들의 시작과 마침 또한 결연하며 엄연할진대
머뭇거릴 이유도, 단호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지금까지의 시스템에 작은 변화를 도입하여
회원들이 그리고 이 곳을 찾고자 하는 많은 분들이
참으로 당당하고 자유로운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게 하고자 한다.
다생소활은 2009년 10월 1일부터 “소활”이라는 명칭을 접고 다른 체계를 구성하고자 한다.
새로운 문명을 열어가는 다생소활이 더욱 탄력적이면서 집약적인 힘으로 거듭나기 위함이다.
모두가 넘나들 수 있는 좀더 유연하고 자유로운 세 개의 수평적 유형을 두어
각자가 처한 상황과 의사를 존중하는 동시에 “행”에 대한 의무도 높여
조금이라도 있을 수 있는 “소활”의 심적 부담은 줄이고 질적인 향상과 보편성을 안배하고자 한다.
세 유형의 명칭은 빛 회원, 참 회원, 행 회원이다.
<빛 회원>
헥소미아 에너지를 취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열려진 몫이다.
<참 회원>
다생소활의 주체로써 다생소활의 지향함과 이루고자 함에 적극 동의하지만
자신의 직장이나 여건에 의해 行을 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분들을 위하여
상대적 심적 부담을 줄이고 자신의 일에 보다 더 열심히 임함으로
세상에 또다른 봉사를 하는 분들을 위한 그룹이다.
다생소활의 모든 활동에 동참할 수 있으면서 형편이 닿는 만큼 모든 일에 참여할 수 있다.
<행 회원>
다생소활의 주체로써 다생소활의 지향함과 이루고자 함에 적극 동의하는 동시에
다생소활의 활동을 우선하며 또한 일의 주체가 되어 목적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분들을 위한 그룹이다.
이전과 비슷한 듯 보이나 가장 중요한 것은
긴박해지고 있는 시대 상황을 돌아보면서
스스로의 입지와 연결하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와
더불어 다생소활과의 관계를 좀더 철저하고 냉철하고 엄격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당당하며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다시 한번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다.
참 회원과 행 회원은 새 문명을 열어가며 세상을 돕기 위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다는 점도 기억해 주시기를 바란다.
지금은 큰 자각이 필요한 때이다.
그런 시기이니 만큼 더더욱 자신의 결정에 책임질 줄 아는 ‘참 사람’이 요구되는 시절이다.
0.1%의 숫자라 할 지라도 혼돈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에 다시 자신을 두드려 볼 기회를 가진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모두는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어야 하겠기에,
후회할 일을 더 이상 만들면 안되겠기에,
그리고 한번 더 다져진 여러분들의 마음을 요구하여야겠기에,
그런 땅에서 더욱 힘찬 돋움닫기를 해야 하기에
이 어려운 때를 함께 힘 모아주실 그대들을 청한다.
당부드리건대 큰 일의 수행을 위해 발 디디는 이 변모를 두고
그 누구라도 시시비비하지 않을 것을 부탁드리며
어떠한 오해나 넘겨짚기식 자기 해석은 사양하는 바이다.
자칫 시절 모르는 경망함으로 자신의 진동수를 갉아먹는 슬픈 일이 없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덕명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