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학교, 다생소활
제도권 안의 학교만이 다가 아닌 것을 우리는 안다.
이미 많은 대안학교나 사설학교, 기타 여러 학교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다생소활도 하나의 학교라고 보고 싶다.
아니, 정말 형식이 없는, 지금껏 보지못한 자율적 배움터이다.
점점 세상은 밝아져 가고 생각보다 에너지적 세상에 대한 접근도
조금씩이지만 그 변화를 느낄 만하다.
가끔 과학서적을 볼 때가 있다,
과학이란 용어 안에는 물론 의학적 분야도 포함되고 있는 것이다.
그 책들을 읽으며 내 눈에는 눈물이 맺힐 때도 있고
알지 못하는 그 분들께 감사의 인사가 절로 나오곤 한다.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을 가지고 한 걸음씩을 다가오고 있는지
한 눈금씩을 더듬어 다가오는 그 모습들과
나는 차마 해내지 못하고 있는 그 실험들과 수치적 관찰과 분석...
내가 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에너지를 운용이나 할 뿐이지
이분들처럼 실험적 근거에 의거한 자료들을 검증하고 체계화를 시킬 줄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감사하다.
이미 얼마나 많이 다가오고 있는지
곧 그것은 세상의 보편화된 지식으로 자리잡을 날이 머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한 과학이 우리의 실생활에 쓰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에너지 세상에는 에너지의 모습들이 점차 규명되어지면서 우리들의 생활도 더 에너지적으로 되어 간다.
다가올 세상이 모두 이해되거나 이를 다 알고 있다면 그것도 좀 말이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의 이해 안에 있어야만 받아들이려고 하고
자기 판단의 폭 안에 정신이 운신할 수 있어야 일단 접해 보려고 하기 때문에
언제나 뒷북을 치고, 이등을 하는 것이다.
튼튼한 다리인지 남이 다 건넌 뒤에야 건너려고 하는 사람은
안전은 할지언정 결코 앞서거나 역사의 한 장을 차지하거나
문명을 이끄는 대열에는 끼일 수가 없다.
그것을 어찌 나쁘다고 할 것인가만
최소한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바람이 다소 세더라도 그것을 이기며 또는 버티며 배워야 한다.
한판승을 해보려는 사람들은 배워야 한다.
그리고 세상을 위해 무엇인가 보탬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바뀌어지는 문명, 세상의 흐름을 최소한의 것이라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생소활에 대한 이해는 실상 쉽지 않다.
이런가 하면 저렇고 저런가 하면 또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세상의 흐름에 따라, 그 수준에 따라 발빠른 변화로 맞추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만한 변화를 직접적이거나, 강하게 느끼지 못하는 분들이 대부분일 게다.
학교? 무엇을 배우는 것일까?
일선에서 활동하며 에너지 세상을 알려주며 본보기가 되어주고 있는 다생소활이란 배움터가 있다.
비록 아직은 미흡하지만 나름대로의 에너지 세상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이끌고
세상을 향한 무작위적 에너지 운용에, 그에 대한 보급까지를 한 데 아우르는 총체적 일을 하는 곳이다.
그리고 에너지로 인한 변화들을 일반에 알리고 그들이 좀더 부드럽게 다가설 수 있도록 가르쳐주고 스스로 힘을 기를 수 있게 도와주는 학교이다.
다생소활은 일반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한다.
그래서 보다 많은 이들이 에너지를 접해보면서 에너지 세상의 공부를 하나씩 배워갈 수 있게 도우려고 하는 것이다.
에너지 세상의 파도가 밀어 닥치는데 에너지를 모르고서야 어떻게 한 걸음이라도 뗄 것인가.
휴대전화기를 사도 그 작동법을 익혀야 하거늘 하물며 이제는 다른 문명의 문이 열렸다.
현명한 이들은 하나의 새로운 분야를 배우는 것처럼 이 역시 삶을 위해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덕명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