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렵더이다.
‘참 존중’을 받아 보지 못한 사람은
존중을 받아도 ‘받는 줄’을 모르더이다.
타율에 익숙한 이들은
자율이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것 조차도 어렵더이다.
‘책임’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이의 ‘책임있는 행동’을 보아도, 들어도 통하지 않더이다.
‘감사하기’도, ‘사과하기’도
그 정도에 적절한 “제대로 된 행위” 하기도 그리 힘들더이다.
남의 발을 밟은 정도에도, 심각한 과실을 범하고도
anytime, “I am sorry."
‘예(禮)를 품은 의식’에게는 자칫 ‘모욕’이 될까 저어되더이다.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에고(Ego)'는
옷깃에 숨은 채 ‘말과 모습’으로 스스로 혼돈스럽고
평상(平常)에 절로 퍼져나오는 빛은 어찌하면 없어질꼬.
그 무엇보다 두렵고 슬픈 것은
자신도 모를 만큼 깊고 짙게 뿌리 내려진 '열등감'이더이다.
모든 생각과 행의 향함이 향(向)열등감으로 비롯된 채,
그 에너지체가 보여주는 것만 바라보며 생각하는 것이더이다.
순도를 높이자고 한 일은
무형의 에너지도 준위에 따라 ‘쓰여짐’,
준위에 의해 달라지는 상황의 ‘이해’ 조차 다름에 하물며...
조금이라도 노력하고자 하는 분들의 시간이 덜 헛되길 바램이었더이다.
해 본 사람이 좀 더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것 처럼
사랑도 받아 본 사람이 남을 더 사랑할 줄 아는 것 처럼,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사람은 차마 남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더이다.
존중도, 자율도, 감사도, 책임도 또 그 무엇도
해 보지 못하고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막상 해야 하는 방법도, 수준을 몰라서도 알기도, 실천하기도, 주는 것도 어렵더이다.
알아 듣는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것인 줄... 참 어렵더이다.
이 모두를 행해 보고 받아 본 사람이
다가갈 줄도, 알아들을 줄도, 더 깊이 있으며 치열할 줄도 알더이다.
이 생(生)을 받아 숱한 경험과 깊은 고뇌, 처절한 고통과 치열한 인내를 겪은 이는
스스로 ‘참과 가식’을 또한 헤아릴 줄 알더이다.
그런 연후... 참 아름다운 ‘사랑과 자비 그리고 빛'이 절로 뿜어져 나오더이다.
덕명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