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질서, 의식
아무도 없는 작은 길, 그것도 시야가 사방으로 훤히 트인 작은 도로에서
신호등 하나 바뀌기만 기다리며 정차하고 있다.
무엇을 위한 원칙이며 누구를 위한 법규일까.
그렇게 안타깝지만 세상에는 너무나 다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아직도 많아서
이렇게 법으로 구속하지 않으면 엉망이 될 지도 모르겠지.
서로들 다른 사람들을 잘 배려하면서 스스로 알아서 가고 서고 오고를 하면 좋을 것이고
그것이 말이 필요없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어야 하는데...
이런저런 사정이나 의식의 상태를 다 알고 있고 더 많은 슬픈 문제점들이 야기될 것도 알지만,
“그래도...”하는 아쉬움이 자꾸 남기만 한다.
<워낙 많은 차들과 사람들이 붐비니까 대도시의 차량 소통은 해당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법질서의 테두리가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어 차량들이 스스로 피해가고 저절로 알아서 교통정리가 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오기 전까지는 ㅎㅎ...기다려야지.>
비교적 한적한 소도시나 시골의 도로에 자신들이 알아서 가고 서는 ‘점멸식 신호등’을 설치한단다.
그것이 오히려 더 사고율을 줄여주더라는 시범시행의 결과도 힘을 보태었다.
숨막히는 기계적 신호에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하는 서글픈 타율에서
이제나마 그리고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게 되어 가는 모양이다.
그것도 우리가 자주 가는 보은에서 먼저 시작했다고 하니 더 반갑다.
의식이 높아 갈수록 자율이 타율을 넘어서며 우선하게 된다.
아직도 타율에 너무 물들여져 '자율이 어색한 세상'에 사는 이들이 많다.
의식의 상승은 법(法)이라는 구속이 최소한으로 줄어드는 것에서부터
그 ‘자리매김’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리라.
치세(治世)의 가장 윗자리가 덕치(德治)임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나는 안다.
덕(德)이라는 것으로, 그것으로 치세하던 때와 그것이 가능한 시절이 있었음을.
그리고 나는 또 안다.
덕이란 것이 당연히 우리의 의식에서 비롯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또 그러한 큰 의식을 가진 자가 베푸는 치세의 마당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러나 나는 다른 것도 안다.
덕이란 것은 보여지는 실제적 행위를 넘어선, 차원 높고 품격있는 에너지라는 것을.
그리하여 이를 이용하여 백성을 살리고 평안하도록 도울 수 있는 것이 덕치라는 것을.
미래, 그 때에
“법이라는 것이 왜 존재해야 했었나요?” 라고 질문할 학생을 기다린다.
덕명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