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한 말이라고 무조건 믿지마라. 스스로 와서 보라.”
짧은 한 줄의 문장에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변화의 마지막 지점까지 다다른 이의 기세와 자신감이 넘쳐 흐르고 있다.
음식을 두려워하고 잠을 비웃으면서 몸을 조롱하던 때가 있었다.
하루 열흘 한달 백일 계속해서 먹잇감을 주지 않자 육체는 바스락거리는 마른 나뭇잎이되었고, 하루 이틀 일주일 움직임이 멈춘 낮 시간이 이어지자 육체는 눈꺼풀 사이로 분노에 찬 비통한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가파른 돌산을 정오에 맨발로 오르면서 본 발 밑의 검붉은 피는 정상으로의 발걸음을 한층 더 재촉하였다.
몸으로 향한 모욕감이 깊어갈수록 정신은 위를 향해 높아져만 갔다.
한때 미덕이었던 고대인이 알려준 길을 따라 우직하게 쉼 없이 걸었던 시기가 있었다.
늘 그랬듯이 홀로.
한 줌의 공기 무게 만큼의 변화의 가능성 그것 만이 생존의 유일한 추진력이었다.
아… 그마저도 없었다면.
빛으로 물든 물을 마시고 빛색의 잉크로 인쇄된 책을 보면서 빛이 울리는 음표의 떨림을 듣는다.
이 시대가 용납하지 않는 과거의 단어인 ‘정진精進’ 이 말이 머무를 자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빛을, 빛의 향이 나는 액체를 몸으로 집어넣자 반투명이 된 그림자 뒤로 실체 - 질척거리던 발걸음의 조정자들 - 의 윤곽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거들먹거리는듯한 움직임을 보이는 실체들.
명민하게도 그림자 밑에 모여있었다. 한 번도 들추어 본 적이 없던 그 곳에.
느릿한 봄 햇살 같은 변화는 수 년째 어릴 때의 계산을 모르는 듬직한 벗인듯 옆에 서서 나와 같이 걷고 있다.
가면서 멈추고 뒤돌아가기까지 하는 까다로운 발걸음을 인내하는 그는.
또 다시 지난 날의 정취에 자극된, 그림자 뒤의 인식된 존재들의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초월적 비범함으로 불룩하게 채워진 주머니를 보고자 하는,
변화의 한 패를 앞서 보고자 하는 부도덕한 영적 도박사이고자 하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고자 하는,
이윽고 文晟宗의 初祖가 되고자 하는 허망한 바람들.
막막했던 밑바닥까지 정화된 진정한 변화를 원하는가.
단지 변화가 가져다 줄 즐거운 느낌을 원하는가.
그 변화를 원하는 이는 누구인가.
‘나’인가. 그늘 뒤의 ‘그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