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세기경 인도의 바라나 시의 녹야원鹿野苑
고행자로 보이는 다섯 명의 사람 앞에 가릴 수 없는 범상치 않는 금색 광채를 뿜어내는 어떤 사문沙門에 의해서 길지 않은 언설이 펼쳐지고 있다.
곧이어 그 중 한 명이 기쁨에 넘치는 표정으로 바뀌면서 사문과 비슷한 빛을 발한다.
기저에 깔린 무상사無上士로 향하는 전적인 신뢰,
몇 사람들을 향한 의미 모를 형이상학적인 설명,
범부가 보기에도 남다른 외모의 수행자가 너무나 남루한 행색의 다섯 명의 걸사乞士에게 어떤 이야기를 한 후 그 중 한 명이 만족에 겨운 웃음을 보이는 모습,
여섯 존재들간의 무언의 기적 대화와 결점 없는 공명.
이 이야기는 불교사에 있어서 고타마 붓다의 성도成道와 동등한 의미를 지닌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는 사건의 매우 간략한 묘사이다.
초전법륜은 성인께서 여러 주 동안의 고심 끝에 세상의 군중에게 마침내 빛을 나누어 주기로 결심한 후 첫 번째로 행한 무량한 자비의 펼쳐짐이다.
삼 천 년이 머지 않은 시간 동안 지표地表에 발을 디딘 수 백억 세상 모든 이의 정신·신앙적 의지처이자 피난처가 되었던 거대한 가르침의 외적 드러남은 지극히 평범하고 어떤 면에서 초라하기 그지없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영속함을 원하는 인류의 바람을 뒤로한 채 전쟁과 휴전의 지루한 반복, 역사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광대무변했던 그 어른의 가르침도 쓸쓸하게 빛이 바래는 때가 오기 마련이다.
오랜 세월 이 때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앞길을 비추어 주었던 희미하게 사그라지는 지표地標를 다시 밝히고 세워줄 장부가 절실하게 필요한 무거운 혼란과 혼탁의 시기.
2009년 12월 대한민국 서울 인사동
한 나라 수도의 번잡스러움과는 적당히 격리된 명상원처럼 보이는 4층에 마련된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 안으로 들어서자 느껴지는 사방 벽에서 부딪치는 부드러운 연홍빛 광선, 매끄러운 공기, 익숙한 향내와 음률.
자리를 잡고 충전 시간이 되자 밝음이 고운 비처럼 내린다.
정수리가 무거워지고 잔존하는 그(들)이 괴로운 듯 꿈틀거리는 움직임을 보인다.
덕명 김인자 선생의 마음 속의 자그마한 움직임이 ‘빛세상 이야기’에 한 줄로 넌지시 표현된지 만 삼 년 만에 구체화된 곳이자 변화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는 후각을 지닌 뭇 사람들에게 열린 채워지지 못한 맑음의 갈증을 해소할 유일한 첫 번째의 공간이다.
극부와 극빈이 공존하는 거의 모든 것이 돈으로 환원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넘치는 물질에 허우적거리다 빛에서 차츰 멀어지는 사람들이 있고, 빛으로 다가가고 싶지만 바닥이 보이는 곳간을 채우기도 바쁜 사람들이 있다.
헥소미아 에너지 스테이션의 개설은 다생소활에서 강조하는 몇 가지 핵심중의 하나 ‘공평무사함’의 결정화이고 파견 헥소미아와 함께 세상을 위한 아무런 조건이 없는 나눔의 또 다른 형태이다.
드러내기 어려운 개개인이 처한 여건과는 무관하게 스스로를 밝히고자 하는 뜻만 있다면 새로운 차원의 ‘밝음’으로 충전해 주는 곳.
물질주의에 속박된 ‘정신’이 다시 숨쉴 수 있는 넓게 열린 마당.
국지적 요동과는 전혀 다른 이번 변화를 맞이한 우리들도 너무 높거나 낮아서 듣기 어려웠던 세상의 밑바탕이 재편할 때 내는 소리를 듣고 있다.
지금 경험하고 있는 생명이랄 수 있는 공기가 목을 죄어오는 그런 모습으로.
마음에 한 줄기 빛이 지나갈 틈이 있는 많은 열린 이들이 도움을 받을 것이고 진심으로 감사를 표할 것이다.
그리고,
세대가 바뀌고 세계 우리의 아이들이 펼쳐볼 역사서에는 이 경사를 이렇게 표현할 것이다.
“인도에서 시작된 자비의 원이 삼 천년이 흘러 한반도 다생소활에서 완성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