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늦가을부터 많은 곳은 아니지만 파견 헥소미아가 일어나는(?) 장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한가한 요즘 그 동안 어떤 자세로 중대사에 임하였는지 문득 돌이켜 보게 되었습니다.
대중 앞에 서서 무언가를 하는 것을 지극히 부담스러워하는 적지 않은 수의 회원들 중 한 명인지라 명상참가자들이 보기에 어설픈 진행을 보이기도 했고, 최고 · 최선의 봉사를 하면서도 격에 어울리지 않는 심리상태 – 상대방을 살펴보지 않는 ‘어떻게 하던 잘해야 한다’는 마치 판매목표의 중압감에 눌린 영업사원의 마음가짐 – 에 놓여 있는 중에 처음 경험해보는 쏟아지는 기운이 내 몸을 통과해서 나가는 느낌에 빠져서 ‘다생’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상황은 기억이 나는데 마음에 떠오르는 얼굴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이기적 개인주의를 적절하게 표현한 모 광고의 문구 ‘나는 소중하니까’에 찬사를 보내는 태도를 견지하는 등 타인의 안녕에 관심을 기울이기엔 불행하게도 제 콧대가 너무 높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가장 최근에 서O희 님과 중학생 한 학급을 대상으로 하는 파견 헥소미아를 하였습니다.
서당개가 격조 있는 문장을 구사하기 시작한다는 삼 년이 지난 뒤라 나름 다생을 위한 조언을 하면서 여유가 있는 매끄러운 진행을 하였습니다.
초 회부터 보여준 어떤 여학생의 의젓한 자세, 명상 중 눈물을 흘리다 교실 밖으로 나가신 저를 조금 당황하게 하셨던 담당 선생님, 마지막 시간까지도 눈을 감지 못하던 그들 나이에 맞는 개구쟁이 아이들 몇 명.
십 회의 명상이 마무리된지 두 달이 가까운 지금 전과는 다르게 아이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그 때마다 헥소미아와 함께 좋은 일이 생기기를 염하곤 합니다.
언제나 주위 사람들에게 살짝 얼은 무관심을 공평하게 나누어 주면서 어떤 영향도 주고받지 않으려고 넘어오지 못할 간격을 두면서 지내왔고, 간혹 가까이 하려는 분들을 냉기로 가볍게 밀쳐놓았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드러내기에 다소 얼굴이 붉어지는 이야기이지만 저에게도 남들을 밝히어줄 ‘내면의 온기’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 대체 저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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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생소활 회원들이 반추해 볼 일화 한가지
“스승님, 깨닫고 나면 무엇이 남습니까?”
“원인을 알 수 없는 미소와 무한한 자비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