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욕심을 부리다 사기를 당했다. 그리고 망해버렸다.
몇개월간 아파트 놀이터에서 멍하니 앉아 팔공산너머에서 불어오는 산바람과 놀았다.
그러던 중 다생소활을 알게 되었다.
다생소활에서의 첫 일년동안 다른 분들과는 다르게 오로지 명상에만 참여하였다.
거의 일년내내 명상할 때마다 어떤 존재가 와서 나의 온몸을 쓰다듬으며 씻어주었다.
이는 피부의 촉각을 통해서 나의 뇌로 느낀 사실이다.
가끔은 꿈꿀 때처럼 뇌의 시각세포로 그분들을 보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마음의 화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내는 그런 나의 변화를 신기해하며 다생소활을 인정하고 함께 명상을 하기 시작했다.
약 십여년동안 사업을 하면서 나의 기질은 지금과 같았지만 또 다른 다혈질적인 면도 있었다.
다행히 동료들은 이런 나를 안타깝게 여기며 이해해주었다.
어느날 다생소활에서 정화를 하던 중 내몸에 빙의된 오래된 영혼을 만났다.
그는 여러 생을 거친 복잡한 카르마로 인해 나에게 아주 화가 나 있었다.
정화를 도와주시던 분이 잘 상담을 해주고 해서 그 존재는 나에게서 떠났다.
동시에 다혈질적인 내 성격의 일부분도 사라졌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그 이후로 약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예전처럼 화를 낸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일은 뇌의 시각세포가 인지하는 것이 '본다'라고 한다면
분명히 내가 보고 겪은 일이다.
나의 가족과 친구는 내 성격의 변화에 대해서 많이 놀라와하고 다생소활을 이해하는 기준으로 삼는 편이다.
특히, 고등학생인 딸은 '아빠가 착해졌어'라고 하며 좋아한다.
딸은 몇년간 발에 통풍을 앓았었다.
정형외과, 한의원 모두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아빠의 변화를 보고 아빠의 신념을 인정하게 되었다.
다생소활의 책에서 좋은 에너지가 나오니 발위에 올려두고 자라고 했다.
기숙생활하는 딸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지만 아빠의 말을 따랐고 그녀는 발이 나았다.
지금도 딸아이는 다생소활을 신기하게만 생각하고 다 받아들이지 않지만 그 사실만은 자신의 경험으로 인정하고 있다.
재발을 반복하던 그 발은 이제 완전히 나은 것 같다.
예전의 동료들과 다시 도모를 시작하고 있다.
나로 인해 큰 고통을 겪었던 형제와 친구들이다. 서로 많은 원망과 상처가 있었다.
어느듯 서먹함은 사라지고 이제 함께 여행을 다니며 아이들처럼 웃고 있다.
나로서는 큰 해원이며 큰 기쁨이다.
예전에는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하자는 뜻이었지만 지금은 함께 일하는 자체로도 기뻐하고 있다.
서로 많이 성장하여 이해관계보다는 평화로운 지속가능성을 꿈꾸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나는 일상을 만들어가고 있고 또한 내가 해야할 일의 환경을 만들고 있다.
노동과 삶을 보는 나의 관점이 바뀌었다.
이 또한 다생소활을 통한 의식의 성장으로 이루어진 큰 배움이다.
다생소활에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바꾸는 에너지가 있다.
가르침, 지식, 지혜만이 아니라 어떤 자연현상인 에너지가 있다.
그 에너지는 명상뿐만아니라 물로도 마실 수 있다.
나는 매일 헥소미아에너지를 마신다.
그리고 이런 몸과 마음과 환경의 변화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 나의 몸과 마음과 삶의 환경이 어찌될지는 짐작도 할 수 없다.
단지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웃으리라는 것은 알 수 있다.
내 주변에는 나보다 훨씬 더 천진난만하게 그리고 자주 웃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