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제자는 채 백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몇십명이 이동네 저동네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 복음은 '회개하라, 하나님나라가 가까왔다.' 였습니다.
동네사람들이 거부하면 옷과 신발의 먼지를 털고 돌아서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 제자 중 많은 사람들은 글을 읽지도 못하였고 잘 먹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단지 예수님에게 끌렸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어떻게 사람이 다시 어머니 배에 들어가나요?' 라고 되물을 만큼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사랑과 평등이라는 새로운 가치관을 세상에 뿌리는 큰 일꾼들이 되었습니다.
계급의 시대에 평등의 가치관을 온 세상에 퍼뜨린 바울은 천막을 기워 팔면서 전도여행을 하였습니다.
대중들 앞에서 연설을 하고 감옥에서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믿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아마 부처님의 제자들도 증산님의 제자들도 그러했겠죠.
가난하고 어리석고 숫자도 적고...
그러나 그들도 스승에게 끌리었을테고 닮아가고 싶었을테고 자책하며 노력했겠죠.
어리석은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들이 제대로 살다갔는지 그렇지 못했는지...
제 머리의 잣대로는 잴 수 없는 영역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성인의 시대에 태어났었고 그분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따랐습니다.
남들이 바보라고 해도 자기의 끌림에 충실하면 자신의 삶이겠지요.
가족에, 재물에, 인정에 밀리고 쫓기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못 살아가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요.
세상이 좋아져서 그런지...
저는 좋은 집에, 멋진 차에, 종일 직장에 있으면서도 하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리낌없이 맹세도 하고...
어찌 그럴 수 있는지... 저의 정신이 제대로 된 건지 혼란스럽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늘이 저를 어찌 쓰시는지... 어찌 쓰실지...
저의 모든 잣대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쓰시고 계시는 건지...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단지 끌림만이 있고 그 끌림에 충실하지 못한 안타까움만이 있습니다.
영화 'Man in Black'의 대사가 떠오릅니다.
주인공이 찾고 있던 은하는 고양이의 목걸이 속에 있었습니다.
'인간은 언제쯤 크기의 문제를 극복할지...'
라고 말하던 외계인 강아지.
베란다 채소재배기에서 새싹이 자랐습니다.
살짝 잘못 건드려 하나가 톡하고 부러졌습니다.
이 여리고 여린 씨앗이 덩쿨이 되고 열매를 맺어 백배 천배의 씨앗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년이 하루같고 하루가 천년같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나라는 어린아이들에게도, 사람의 마음에도 있고, 동시에 역사의 어느 날에 다가오는 왕국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의 종말은 매일 매일 있어왔습니다.
단지 캐캐묵은 습과 어리석은 감각이 내일도 같은 해가 뜰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했을 뿐입니다.
저는 이제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제서야 예수님과 바울의 믿음이 제대로 다가옵니다.
'끌림'은 곧 해야할 바를 몸이 먼저 자각하는 것이며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면 '믿음'이 된다는 것을...
그래서 바울선생의 말처럼
끌림에 대한 '믿음'과
빛세상에 대한 '소망'과
더불어 살아가고픈 '사랑'은
이 세상 끝까지 영원하며
그 중에 제일은 함께 좋은 빛세상, '사랑' 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