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가 어눌하여 표현함에 미숙함이 많은 저로서는
의도치 않게 아니면.몰라서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제가 다시 동문서답(東問西答)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글을 쓰려니
마음속에는 표현 할려는 뜻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생깁니다.
위의 동문서답은 모두 아시겠지만 그 뜻은
동쪽을 묻는데 서쪽을 대답한다는 뜻으로 묻는 말에 대하여 전혀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요 몇일전에 있었던 경험담을 쓰려다 보니 이렇게 부족함을 달래려 사전검색까지 하게 되네요
우리말 중에 끼다 라는 말이 있읍니다.
검색을 하여 본 결과
1,끼우다의 준말. 2, 팔이나 손을 걸다. 3.곁에 두거나 가까이 하다.
4, 때나 먼지 따위가 엉겨 붙다. 5, 안개나 연기 따위가 퍼져서 서리다.
6, 이끼나 녹 따위가 물체를 덮다.
관용구 표현에는 - 한 몫 끼다
마땅한 자격을 가지고 함께 참가하다. 라고 알려 주고 있읍니다.
마지막 관용구의 예처럼 끼다는 참가하다라는 뜻이 있는데요
저는 지금껏 그 단어 그 뜻에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는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존경하는 그 분께서 묻습니다.
아이고 요새 성수님 일마다 많이 끼네?
- 헤에
그래 요새 좀 많이 꼈다.
- **님 걱정하지 마세요 (아주 자신감 넘치는 양 대답했습니다.)
헤어지고 나서는 우울한 모드에 젖어 갑니다.
어떻게 읽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위의 대화에는 많은 감정들과 의문들이
숨어서 작동을 하고 있읍니다. 무슨 대화인지 알겠나요?
왜? 그 분께서는 나 한테 저런 말을 하시지?
내가 저기에 있을만 한 조건이 안되나?
그럼 무엇을 더 보여 드리고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지?
내가 그렇게 부족한가?
지금까지 내가 안타깝고 안스러워서 마음을 써 주신건가?
무슨 자격을 갖추려면 어찌 해야하지?
차를 타고 올라오면서도 그 대화에 빠져 힘이 없고 속상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르니 의욕도 없어지고 얼굴은 굳어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끼다"라는 말에 엄청난 부정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깍두기 신세라고 할까요
하다 하다 보니 모자르거나. 억지로라도 해야 할 때 필요한 존재.
기쁜 마음에 그 자리에 끼었더니 너는 왜 끼었냐고 핀잔을 받을때의 그 수치.
거절을 당하니 멀쑥해지고 자신감은 없어지는 초라한 자화상.
그 쪽에서 받아 준다고 하여도 기쁘고 즐겁기는 커녕 이 만 하길 다행이라며
위안을 삼아야 하는 초라함.
있으나 마나 한 존재이기에 조심해야 하고 잘 보여야 하며 위험한 행동은
절대 하면 안되기에, 늘 고맙다며 고개를 숙여야 하는 괴로움
이러한 감정들이 끼다" 라는 동사에 담겨 있었읍니다.
그러다 보니 앞의 대화가 썩 즐겁지는 않았다는것을 알았을겁니다.
위의 부정적 감정을 갖고 대화를 풀면 이런거죠
아이고 요새 성수님 일마다 자격은 안되는데 자주 보이네?
그래 요새 낄 때 안낄때 분간 못하고 넘 자주 낀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로 들리니 제가 무엇으로 답하겠읍니까?
가까이 하기엔 너무 어렵고 알 수 없는 분이시지만.
최근에 좀 더 가까워져간다고 느껴지기에, 저 때문에 고민하고 걱정하시지
말라고, 자신 있는 척 하며 말하지 않습니까
걱정마세요 **님 ㅜㅜ
이제 왜 글의 제목이 동문서답인지 알았나요?
하루가 지나고 친하디 친한 분과 저녁을 먹으면서 그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리고 대화가 오고 가는 순간. 참으로 짧은 순간에 버뜩 떠오릅니다.
끼다" 라는 단어적 뜻인 참여하다라는 것과 그 분의 있는 그대로의 질문이
말입니다. 신기하면서 경탄할 일이었읍니다.
그리고 재 해석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아주 명쾌하게 풀려갑니다.
아이고 요새 성수님 일마다 많이 참여하네?
그래 요새 많이 참여했다
간단한 물음이었읍니다.그 어디에서도 그 어떤 무엇도 첨가되지 않은
순수한 그 물음이었는데
저는 그 물음에 많은 뜻과 감정을 가지고 답을 하였던 것입니다.
얼마나 황당하셨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걱정말라니
사오정 소리를 들어 왔지만 완결판을 짓는 듯 합니다. 그 물음엔 이런 대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다 **님 덕분입니다.
일상적이라면 일상적인것에 주눅든 감정들이 설쳐댔던 것입니다.
다생소활에 와서 지금까지 수 많은 말씀과 충고 보이심을 보여 주셨는데
무엇을 들었고 무엇을 보았는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고귀한 말씀과 깨우침을 주어도 그것을 듣는 귀가 없음은
이것을 말함이 아닌지도 모르겠읍니다.
스스로의 잣대로 자르고 걸르고 빠뜨리다 보니 본말전도(맞나?)가 될 수 밖에요
본 뜻에, 스스로가 지은 오래디 오래 묵은 그 부정성과, 나약한 감정들로 인해, 많은 것에서 오해가 있었읍니다. 이는 자신이 겉만 보고 판단함이며 속을 들여다 보려 하지 않는 게으름이었읍니다. 속을 들여다 볼 수 없게 하는 그 어떤 무엇이었고 속을 들여다 볼수 업게 하는 그 어떤 작용이었읍니다.
스스로의 부족함이었읍니다.자격지심이라고 하나요?
있는 그대로 그 어떤것도 첨부 되어 있지 않은 그대로 임을 알았읍니다.
순수함을 보았기에, 그 순수함을 더럽힘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정의
찌꺼기 임을 알았읍니다.
아마 뭇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것으로 듣고 행동한다면 순수함을 찿는데 많은 도움이 될것도 같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삶으로 갈 수 있게
눈과 귀에 낀 찌거기들을 맑고 밝게 정화해야겠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