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전이 시작하는 수요일입니다.
집을 나서려고 하는데 기상캐스터가 말합니다.
‘오늘은 비가 갠 다음 날이라 하늘이 구름 한점 없이 맑고, 수은주는 18도에서 21도를 가리킵니다. 초속 10미터 내외의 미풍이 기분 좋게 얼굴에 와닿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일년 중에 한 두 번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상쾌한 날씨입니다.’
밖을 나서니 정말 사람들의 얼굴이 맑기 그지없습니다.
나무들은 더할 바 없이 파릇파릇 생기가 가득합니다.
나는 두 팔을 한껏 벌리고 바람의 결따라 손가락을 하느작하느작거리며 장난을 칩니다.
마치 종이 비행기처럼 바람결 따라 춤을 춥니다.
정말 기분 짱입니다.
하지만 전 이제 이 모든 사실의 이유를 조금은 알아버렸습니다.
‘참’을 봐 버렸거든요.
영점장의 바다에 우리의 의지가 춤을 춥니다.
세상은 우연으로 흘러온 듯하지만 사실은 많은 존재들의 믿음과 희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역사의 순간 순간에는 아름다움을 위한 헌신이 숨어 있습니다.
그 헌신이 곧 역사입니다.
백 만 년 의지의 역사가 오늘 하루 여기에 모였습니다.
무문명의 시대, 혹한의 산맥을 넘어 진리를 전파하던 그 거친 두발에, 지금은 예쁜 구두끈 죄어 매고 교통카드 한 장 들고 전시장으로 쫓아갑니다.
춘추전국시대, 이루어야 할 문명의 여정을 위하여 칼을 쥐었던 그 손에, 이제는 전단지 한 장 달랑 들고 삼성동 코엑스로 뛰어 갑니다.
모든 이루어짐의 때, 해맑은 웃음 속에는 아득한 그리움의 완성이 있습니다.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바람도 알고 기상캐스터도 압니다.
손 끝에 봄 바람이 찰랑댑니다.
내 손은 눈 끝에서 주욱 뻗어 빛의 환영을 만듭니다.
빛나는 나의 손은 바람과 함께 어우러져 허드러지게 춤을 춥니다.
하지만 ‘참’을 봐 버린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 빛이 환영이 아니라는 것을요.
어디가 바람이고 어디가 내 손가락인지 마치 맛있는 전복물회국수처럼 그 경계를 알 수가 없습니다.
오감, 육감으로 나누어져 있는 이 경계가 사실은 에너지의 바다에 춤추는 내 존재의 인식이라는 것을, 그 인식이 곧 내가 만든 우주라는 것을 알아버렸습니다.
나는 거기서 친구들의 우주와 함께 춤추고 있습니다.
이렇게 온 세상은 더불어 물방울처럼 퐁당퐁당거리고 있습니다.
원래가 더불어 존재하고 있으니 어찌 함께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참 참 참
오늘은 ‘참’ 발간회를 하는 날입니다.
결혼식 때보다도 더 열심히 옷장을 뒤져 예쁜 옷을 고릅니다.
지금까지 잘 살아온 내 영혼에게 축하하는 날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열심히 정성을 다해 옷을 고르고 있습니다.
마음은 자꾸 뭉클해지고....
아직은 온갖 에너지체가 나를 유혹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내 영혼과 한 약속이 떠 오릅니다.
살아가기는 여전히 힘들고 구석진 방에 햇빛도 잘 들지 않지만 작은 창틈으로 파란하늘이 비칩니다. 언젠가 더 넓은 들판에서 말을 달리며 춤을 추던 파란하늘입니다.
이제 나 아닌 것들 다 내려놓고 달려 나가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온 세상에 가득 찬 헥소미아를 품에 안고 다시 ‘나’를 만나야 한다는 것을요.
그것이 곧 우리가 함께 만들기로 한 새로운 우주 ‘빛 세상’ 이라는 것을요.